독은 양이 결정한다
언젠가부터 건강에 좋은 것, 안 좋은 것의 정의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보통 건강에 안좋다고 하는 것들을 나열해보면,
카페인, 설탕, 고기 같은 것들이고,
건강에 좋다고 하는 것들은,
비타민, 채소, 아미노산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왜 꼭 맛있는 것은 건강에 나쁘지?라고 아쉬워한다.
사실은 맛있는 것이 건강에 나쁜게 아니고, 많이 먹어서 건강에 나쁜 것이다.
만약, 커피와 고기가 맛이 없고, 채소와 뿌리 식품 등이 맛이 있었다면, 알약으로 된 카페인을 건강식품으로 섭취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뜻이다.
결국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항목이 아니라 양이다.
어떤건 무조건 건강에 나쁜 것도 있잖아? 라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임계점 자체가 매우 낮은것이라고 해석하는게 맞을 것이다. 보톡스도 소량만 쓰면 약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과거 서양의 일부 국가에는 음식이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라든가, 정신건강이 육체의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점성술 등과 같은 신비론으로 취급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선 음식으로 섭취할 수 있는 성분의 양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장기간의 실험이 필요하나 그럴 여건이 되지 못했고, 거기에 더해 네트워크가 발달하지 않았던 점까지 더해 여러모로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양의 임계를 평가할 방법이 없어서, 항목 자체를 무시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양이 약과 독,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이미 과학계, 의학계에서는 상식에 가깝다.
알콜도 조금만 마시면 건강에 좋고, 평생 채식만 한 사람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결과도 꽤 있으며, 비타민과 미네랄도 상한, 하한섭취량이 정해져있다.
즉, 어떤 항목에 대한 영향도는 단순한 선형그래프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형태의 그래프라는 의미이다.
과학은 옛날부터 약과 독은 결국 양의 문제라는 사실과, 선과 악, 좋고 나쁨은 모두 양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보는 선과 악의 프레임의 여러 동화, 만화들부터 저건 좋은거야, 저건 나쁜거야 같은 이분법적인 교육 방식 등이 사람들의 생각을 틀에 갇히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프레임이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결국 진실을 왜곡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보니, 선과 악의 프레임을 강조하는 류의 영화를 보면 바보 취급 당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고, 정치를 비롯한 사회문제에서도, 하다 못해 기업, 상품을 평가하는 것에도 선과 악의 프레임,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들다보니 어떤 논쟁이 일어날 때, 보통 제3의 의견을 내게 되는데, 이러한 의견은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깔끔하게 해석되기 어렵다보니 많은 경우 "그래서 너는 누구 편이라는거야?" 라거나 내 의견을 마음대로 해석한 후, "아, 그래서 너는 이 쪽 편이라는거지?" 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끝이 난다. 어쨌든 자신의 프레임에 끼워맞추지 않고선 해석이 안되는거지.
좋고 나쁨을 항목이 결정한다는 프레임은 지금 하는 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서비스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액션과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액션은 액션의 종류가 미치는 영향과 함께 그 양, 강도까지 더해서 최종결정 될 것인데, 대체로 양은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며, 항목, 방법론에만 집중한다. 이 이야기는 6, 7년 전 글에도 수 없이 언급되어 있지만, 성공과 실패는 적절한 타이밍, 주어진 환경의 적절함, 또, 오늘 이야기하는 그 방법론을 실행하는 강도 등 다양한 차원의 조합으로 결정되는 것일진데, 더 중요한 요소인 양, 환경 등을 무시하고, 방법론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최종 결론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그 양을 무시하고 방법론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실제론 그 양이 옳고 그름을 결정하였음에도 그 방법론이 옳고 그름만으로 최종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것들은 수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이로 인해 그 동안 발생한 비용낭비는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특히, 양에 대한 중요도가 무시된 분석결과로 인해 몇 번 실패를 맛본 사람들은 데이터 분석이라는 방법론 자체를 불신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욱 더 클 것이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든 방법론은 그 양에 따라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양(그게 절대값이든 상대값이든)과 항목이 포함된 방법론만이 방법론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양이라는 관점을 포함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저 사람은 이게 맞다는거야? 틀리다는거야? 오늘은 맞다고 했다가 내일은 틀리다고 하네?"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2차원 그래프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3차원 그래프에서의 공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호해보일 것이며, 그 것은 새로운 차원을 이해하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블로그 암호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6년만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간 내 생각도 변한게 없고 세상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근 10년간의 내 질문을 하나로 요약하면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차원 축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