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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gaganation 2018. 9. 18. 00:17

1.

초등학생 때인지 중학생 때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참고서에서 본,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글 하나가 있는데,

대충 요약해보자면,

조선시댄지 언젠지 어떤 지역의 효자문에 대한 이야기인데,

보통 효자문에 기록될 정도의 효자라면 겨울에 산딸기를 따오네 마네 하는 부모를 극진봉양하는 내용에 대한 글이 대부분인데,

이 효자는 매일 아침마다 나가서 노는지 어쩌는지 저녁 늦게나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께 발을 씻기게 하고(씻겨 드린게 아니다)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 실컷 먹고, 퍼질러 잤다는 내용의... 당시의 사고방식이 단순했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겉으로 보이는 행위가 중요한게 아니라, 결국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주었냐가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만약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위험한 일을 하다 다치면 그건 효도인가 불효인가? 결국 뭐 이런 이야기다.

어렸을 때 읽은 이 글이 평생 뇌리에 남아 지금도 내 인생 전반의 생각,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사이의 프로세스 등에 집착하면 오히려 본질을 놓치고 허상을 좇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고.
일을 잘 하냐를 근태 및 인사 잘하냐로 대신 평가한다든가 그런 것이 예시일수도 있고.
단지 상관관계가 높은 지표일 뿐인 것을 과대평가하는 오류인거지.

어쩌면 이 글 하나 때문에 단순한 선악구도, 혹은 이분법(남여, 흑백, 진보 보수 등)의 스토리, 사고방식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독약처럼 느껴지고, 겉만 보고 혹은 잠깐 보고 무언가를 판단하는 경직된 사고 방식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 같은 것들을 만든 것 아닌가도 싶다.

 

2.

고향에 있는 부모님 댁은 오래된 아파트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살던...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마트에서 장을 봐오면 집까지 들고 올라가기도 버겁다.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내가 커서 돈을 벌면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께 더 크고 좋은 곳으로의 이사를 권유했다.

하지만 답변은 의외였다. 거절이었다.

부모님께는 새 집보다 30년간 살던 동네, 그 오랜시간동안 알게 된 좋은 사람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안부 인사가 더 중요했던 것을 나는 간과했던 것이다.

결국 나도 겉만 보고 판단하는 단순함. 또, 낡고 삐걱대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무엇이 본질인가"를 늘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도 수시로 간과하는 것 같다.

결국 부모님께서 좋은 집으로 이사갔으면 하는 마음은 진정 부모님을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함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 와중에 내가 억지로 부모님을 이사 시켰다면 더 확실할것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정말 그렇게 했었다. 부모님께서는 아마 새 집으로의 이사가 좋지만 내가 부담스러울테니 거절한 것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리고 부모님 몰래 새로운 집을 구해서 짠 하고 보여드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몇날 밤을 뜬 눈으로 보내시곤 조심스럽게 저에게 미안하지만 이사를 안가면 안되겠냐는 부탁을 하셨다.

나는 효도를 한 것인가. 불효를 한 것인가.

나는 결국 부모님께 사과를 하고 집을 도로 내놨다.

그리고 내 생각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고, 좁아져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3.

얼마전에 회사사람들과 같이 저녁을 먹다가 프로듀스48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확하게 옮겨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일본 연습생들의 사고방식에 충격을 느꼈다. 심사위원이 어떤 일본 연습생에게 "당신은 춤도 못추고 노래도 못하는데 열심히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당신은 평소에 뭘 하는가?" 라고 물었을때 그 연습생의 답변은 "귀여워지는 연습?" 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게 핵심이라고 느꼈다. 결국 이 연습생의 핵심목표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늘리는 것이고, 그게 꼭 춤이나 노래를 잘하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래와 춤을 실수하고 못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매우 공감한다. 

핵심, 본질을 파고들면 시야가 넓어지며, 이분법적 사고, 겉만 보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 일본 연습생의 팬이 나의 완벽한 모습보다 실수하는 모습을 더 좋아한다면 차라리 실수를 하는게 나은것이다.

'잘하는 것이 못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라는 사고는 경직된 사고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완벽하게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어설프게 춤을 추는 것은 못하는 것인가?

완벽한 춤을 추는 사람이 어설픈 춤은 추질 못한다면 그건 잘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진짜 본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어설픈 모습으로 사랑받던 연예인이 어느순간 완벽한 모습을 보여서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좋은게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정해주는 선악구도의 만화 및 모든 매체, 교육 방식들이 사람을 망치는 독약 같이 느껴진다.

내가 자녀를 가지진 않겠지만, 만약에 내가 누군가를 교육한다면 단순한 선악구도의 매체는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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